🐿️ 멈추지 않는 다람쥐와 끝없이 돌아가는 도토리 공장
어른들을 위한 우화
숲속에 도토리를 가공하는 공장이 하나 있었다.
공장에는 커다란 나무판이 끝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동물들이 도토리를 올려놓으면 나무판은 도토리를 다음 작업대로 옮겼고,
그곳에서는 껍질을 벗기고, 크기를 나누고, 자루에 담았다.
공장장인 곰은 매일 아침 이렇게 외쳤다.
“오늘의 목표는 어제보다 더 많이! 작업 속도를 높여라!”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서도 다람쥐 한 마리는 유난히 일을 잘했다.
이름은 칩이었다.
칩은 손이 빨랐고 눈치도 빨랐다.
다른 동물들이 도토리 열 개를 정리할 때 스무 개를 정리했고,
남들이 퇴근할 때면 다음 날 할 일까지 미리 끝냈다.
공장장은 칩을 칭찬했다.
“훌륭해! 네 덕분에 생산량이 두 배가 되었어!”
칩은 뿌듯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장장은 칩에게 일을 두 배 더 주었다.
“자네는 능력이 있으니 이것도 맡아 주게.”
칩은 조금 당황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다시 여유가 생기겠지.’
그는 앞발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도토리 껍질을 벗기면서 다음 작업을 생각했고,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의 작업량을 계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내일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칩은 마침내 모든 일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끝냈다.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드디어 끝났다!”
하지만 공장장은 기다렸다는 듯 새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잘했네. 그럼 이것도 오늘 처리하게.”
칩의 귀가 축 처졌다.
“공장장님, 제가 일을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만…….”
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생산성이라는 거야.”
칩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괜히 따졌다가 게으른 동물로 찍힐까 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무판은 전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공장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토끼는 도토리를 나르면서 숫자를 외웠고,
고슴도치는 가시 사이에 연필을 끼운 채 장부를 썼다.
오리는 물을 마시는 시간까지 줄였다.
공장에는 이런 표어가 붙었다.
“시간은 금이다. 1초도 낭비하지 말라!”
동물들은 그 표어를 보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장에는 늘 일이 남아 있었다.
도토리를 빨리 처리하면 포장할 일이 늘어났고,
포장을 빨리 끝내면 검사할 일이 늘어났다.
검사가 끝나면 보고서를 써야 했고, 보고서가 끝나면 보고서를 검토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나면 회의 결과를 정리하는 회의가 추가되었다.
어느 날 토끼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도토리를 만드는 건지, 도토리 때문에 서류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네.”
고슴도치가 대답했다.
“쉿! 그런 말 하면 개선 과제를 하나 더 받을지도 몰라.”
둘은 씁쓸하게 웃고 다시 일했다.
칩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점점 지쳐 갔다.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공장 생각이 났고,
밤에는 잠들기 직전까지 일을 걱정했다.
그는 쉬는 날에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숲길을 걸으면서도 나무에 열린 도토리의 개수를 세었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작업 순서를 정리했다.
어느 날 친구인 고슴도치가 물었다.
“칩, 오랜만에 호숫가에 가서 놀지 않을래?”
“미안해. 오늘은 할 일이 많아.”
“그럼 내일은?”
“내일도 많을 거야.”
고슴도치는 잠시 칩을 바라보았다.
“그럼 언제 시간이 나는데?”
칩은 대답하려고 했지만,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숲에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일 년에 단 한 번, 모든 동물이 일을 멈추고 함께 노는 날이었다.
칩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쉬겠다고 결심했다.
축제 전날 밤, 그는 모든 일을 끝내기 위해 평소보다 세 배 빠르게 움직였다.
앞발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눈은 충혈되었으며, 꼬리는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마지막 도토리 자루를 포장한 순간, 칩은 외쳤다.
“끝났다!”
그런데 나무판 위에는 새로운 도토리 자루가 쏟아져 들어왔다.
칩은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할일이 아닌데요?”
곰이 말했다.
“맞아. 그런데 자네가 오늘 일을 빨리 끝냈으니 미리 해 두면 좋겠지.”
칩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공장장님, 저는 오늘 축제에 가고 싶습니다.”
곰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공장에 일이 쌓여 있는데 축제라니?
자네가 책임감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칩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는 처음으로 공장의 나무판을 바라보았다.
도토리는 끝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나무판은 멈추지 않았다.
칩이 오늘 일을 모두 끝내면 내일 일이 오늘로 당겨질 뿐이었다.
그가 남들보다 두 배 빨라지면 공장은 두 배의 일을 기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빨라져야 하는가?
세 배? 열 배? 백 배?
나무판이 돌아가는 한, 끝은 없었다.
칩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장장님, 저는 오늘 퇴근하겠습니다.”
곰이 소리쳤다.
“그러면 밀린 일은 누가 하지?”
칩은 잠시 생각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이 공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숲에는 저녁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칩은 처음에는 불안했다.
‘내가 일을 남겨 두고 나왔어.
내일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다른 동물들이 나를 비난하면?’
그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공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호숫가에 도착했을 때, 고슴도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왔네!”
칩은 어색하게 웃었다.
“응. 그런데 나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고슴도치가 물었다.
“그럼. 왜 안 되는데?”
칩은 대답하지 못했다.
두 동물은 호숫가에 나란히 앉았다.
물 위로 노을이 번졌고, 바람에 갈대가 흔들렸다.
멀리서 새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칩에게 생산량을 묻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음 일을 맡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완수하지 않았는데도 해는 아름답게 저물었다.
칩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일을 끝내야만 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끝낼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일 앞에서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칩은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일을 혼자 떠안지도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작업량을 점검했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였으며,
아무리 빨리 끝내도 새 일이 계속 쌓이는 구조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곰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동물들이 차례로 과로를 호소하자 결국 작업 방식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예전보다 조금 느려졌다.
대신 실수가 줄었고, 동물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여유를 되찾았다.
칩도 여전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이 남아 있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불편함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하루를 얼마나 많은 일로 채웠는지로 자신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았다.
어느 날 어린 다람쥐가 물었다.
“아저씨, 일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그냥 갈 수 있어요?”
칩은 웃으며 대답했다.
“일은 내일하면 된단다.”
“그럼 오늘 안 하면 안 되는 일은요?”
칩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정말 오늘 해야 하는 일은 오늘 하지.
하지만 모든 일이 오늘 해야 하는 일인 척한다고 해서, 정말 그런 건 아니란다.”
그날 저녁, 칩은 호숫가로 향했다.
공장에서는 여전히 나무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도토리는 들어오고, 나가고, 또 들어왔다.
하지만 칩은 더 이상 그 소리를 들으며 뛰어가지 않았다.
그는 노을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오늘도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만 누릴 수 있는 저녁은, 지금 그의 앞에 있었다.
[짧은 생각]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많이 주어지는 세상에서는,
성실함만으로 여유를 얻기 어렵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끝없이 더 많은 일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문제는 개인의 속도만이 아니라 일의 구조에도 있다.
모든 일을 끝낸 뒤에야 살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평생 삶을 다음으로 미루게 될지도 모른다.
'할 일을 모두 끝내야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끝나지 않을 일들 사이에서도 삶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반골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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